바빴다.

의도와 술수로 범벅된 남을 위한 글을 써야 했다. 빌어먹는 삶을 살기 위한 절차는 놀랄만큼 세세하게 치열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의미 했다. 좀 더 큰 곳에서 오래, 편하게, 많이 그리고 거들먹 거리며 어깨에 힘주고 빌어먹기 위해서, 다른 빌어먹을 자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아니 사실 반복해야한다고 생각하느라 바빴다.

 

차분히 토대를 다져가며 성장하는 것에 집중하면 좋았을 텐데, 예상치 못한 면접의 기회는 나의 몸과 마음을 붕 뜨게 만들었다. 안전장치 없이 붕 뜬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더 가깝다. 높이 하늘에 올라 휘저은 손에는 포근한 구름이 스쳤고 얼핏얼핏 비치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꼈다. 동시에, 까마득한 아래 점처럼 보이는 어둔 땅바닥으로 당장 곤두박질 칠 것같은 위태로움도 현실이었다. 양가적 감정 앞에서 담담하지 못한 것은 죄였고 벌은 가혹했다. 끈 떨어진 연처럼, 베터리 다 되어가는 드론처럼 여기저기를 헤매며 지냈다.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한다던지, 시즌제 드라마의 예정된 종영에 한없이 무너진다던지 하는 방식이었다. 요컨대, 가야할 길을 알면서도 방앗간에 들러 가야할 길을 힐끔대며 들깨를 주워먹는 참새와 같았다. 

 

땅에 내려서고 싶었다. 아니면 적어도 미친것 처럼 소리지르던지, 그것도 안된다면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싶었다.

 

셋 다 못해서 그냥 자소서 쓰다가, 면접 갔다가, 설거지하고, 방청소하고, 카페갔다가, 씻고 자면서 살았다.

뻔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난 뻔한 어린이였다. 뻔한 학생이었고, 뻔한 군인이었으며, 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특별한 무언가는 아니었네.

뻔하게 살다갈 운명인건지, 관성적으로 뻔한 선택만 할 수 없게 되어버린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술을 너무 오래 참아가지고 헛소리가 늘었다.

이 글은 정말 헛소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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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2학년의 끝자락에 월곡초등학교로 전학왔다.

당시 학교 바로 앞 동아 에코빌 아파트로 이사오게 되었고, 자연스레 월곡초에 다니게 되었다.

그 때의 디테일한 기억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학교의 정경들은 몇가지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개중 가장 선명한 것이 학교 후문에 관한 기억이다.

학교의 출입문은 총 3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문, 후문, 그리고 옆문(?) 이렇게 3개 였었다. 옆문이라 하니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로 보이나, 오늘은 후문을 위주로 담아내본다.

 

후문은 말 그대로 학교 부지의 뒷편에 위치했던 출입문이었다. 당시 학교는 야트막한 동산 위에 지어진 형태여서 약 2~3개의 건물이 이어져있던 구조로 있었다. 편의상 후건물이라 부른다면, 후건물 뒷편, 작은 테니스장이었는지 어쨌든 초록 우레탄 바닥 재질의 작은 공터에서 오르막길 형태로 조금 올라가면 후문이 있었다.

 

난 정문에서 거의 바로 이어진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4학년에 이사한 이후로는 집안에서 학교 운동장이 보일정도였다.) 후문에 갈 일은 많지 않았지만, 종종 들러 시간을 보내곤 하였으니 그곳엔 성북구 최고의 놀이동산이 있었기 때문이다.(드림랜드 제외) 학교 후문에서 출구방향으로 걸어나갈때 우측편에는 적당한 키의 나무들이 숲을 이룬 한 단 높은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 사이로 작게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당시 최고 스펙을 갖춘 최첨단의 놀이기구, 방방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며 방방이라는 놀이기구의 호칭에 관한 격렬한 논쟁을 수차례 겪었다. 팡팡, 퐁퐁 등등 다양했지만 외래어 트램펄린에서 파생된 것인것 같다라는 부분에서는 대부분 동의하였고, 끝내는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기억이 있다. 왜냐면 누가뭐래도 내마음속에서는 방방이라고 부를거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 방방을 운영하시던 분의 인상착의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이 나는건, 그 작은 공터에 방방이 몇 개가 있었고, 슬러시를 만들어 파셨다는 것 정도 뿐이다. 어릴 적 난 용돈을 많이 받는 아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방방 서비스를 무슨 돈으로 지불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10분이었는지 30분이었는지에 몇백원 내고 이용하고 있으면 종종 돈을 내지도 않았는데 슬러시를 주시곤 했다. 옛날엔 정이있었다, 따위의 말이 많이 들린다. 내 삶의 흔적속에선 그에 대해 동의할 만한 경험은 거의 없는데 그중 그 방방 주인분의 슬러시가 꼭 들어간다. 

 

단순히 아래위로 뛰는게 그렇게 재미있었던 그 시절, 선명하진 않지만 뿌옇게나마 행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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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을 쓴지 정말 오래 되었다.

자기소개서랍시고 나를 소개하는 글은 몇개씩 써제끼긴 했는데, 그건 나의 글은 아니고, 남의 글이었다.

 

글을 써야하는데라는 생각은 반복적이었다. 운동을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학교 선배와 점심을 먹고 왔다. 학교를 다닐때는 큰 공통점도 없었고, 난 살가운 후배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문득 연락해서 한끼 하게 된 건 둘이 비슷한 길을 선택해서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간의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비슷한 길을 가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다양한 말을 해주셨지만 핵심은 '그냥 하라' 였다. 

어떤 기회든지 포착이 된다면 무조건 하라. 

가고자 하는 길은 여러가지로 제약사항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다른 영역에 대한 지식도 많이 필요하다.(기반이 되어야한다.) 그럴 때 그런 지식이 없으면 어렵다. 어차피 필요한 사항이라면 무조건 해라. 

 

다른 생각이 너무 많았다.

매일 2시에 퇴근하신다는 선배에게, 나도 그런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되었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실력이 늘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알고리즘, 분명 공부하면 실력이 늘것이다.

그럼 해야겠다. 시간이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시간을 쏟아야 겠다.

얼른 커리어를 시작해서 시간을 쏟아야겠다.

 

그 분야가 어디든 어떻게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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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밝은 분위기를 내뿜는, 아니,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항상 에너지를 뿜으며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는 등굣길에 학교 앞 지하철역에서 그녀를 만나 함께 강의실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불과 5분정도를 걷는 동안 10초마다 한명씩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하던 그녀를 보며 '다른세계'라는 건 이런거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검게 변한 휴대폰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란 것 치고는 평온해 보인다.

답장을 하려 움직이던 엄지가 멈칫 했다.

 

완전히 잊고있었다.

그녀와 나눈 건 아니지만, 그녀가 관계된 아주 특이한 일이 있었다.

 

미간이 좁아짐을 느끼는 순간,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렸다.

'바쁜가보네.. 보면 연락 줘, 기다릴게'

엄지 손가락이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잠깐의 방황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세 번의 신호음이 끝나기 직전,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어, 성민아.. 오랜만이야.'

 

말 끝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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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곡초등학교(장위동) 2007년 2월 졸업생 (1994년 출생)입니다.
기억에 남는 몇 에피소드들을, 더 흐릿해지기 전에 조금씩 적어두는 공간입니다.

 

추억팔이충이라고 종종 놀림을 받곤 한다.

태생인지 뭔지 사람들과 모이면 이내 함께한 추억얘기를 꺼내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락하며 지내는 초등학교 친구가 없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자세한 건 차차 정리하도록 하겠다.

요지만 요약하자면, 철저히 내 입장에서 기억하는 서울월곡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을 그때 그때 적어놓으려 한다.

 

비록 글재주는 없지만 순수했던 시절은 떠올려 글로 적어내는 것 만으로도 울림을 줄 때가 있기 때문에, 작은 용기를 내고 거창한 제목을 달았다. 

 

어느 날 비슷한 향수를 찾아 여기까지 오게된 동창이 있다면 반가울 따름이다.

혹여 개인적 친분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좌측 프로필 주소로 메일 바란다. 연락이 올리는 없겠지만. ㅎㅎ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셋정도 있다. 혼자만 간직하던 나의 이 기록이 그 친구들에게 까지 닿길 바라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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