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기간의 장기화의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돌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타인의 기준에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아무거나 먹게 되었다. 먹는거라도 내 마음대로 하자고 핑계를 댔다.

운동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에라도 좀 쉬자고 핑계를 댔다.

가계부를 적지 않았다. 자투리 돈이라도 마음대로 쓰자고 핑계를 댔다.

 

저녁 대부분은 핑계를 대면서 보내다보니, 오 이게 편하네? 싶었다.

 

이제 낮시간도 핑계를 대며 보내게 되었다.

 

자소서 제출 빈도가 줄었다. 아 그 기업 원래부터 안가고 싶었어.

끝내지 못한 강의가 늘었다. 아 그 강의 뭔가 별로 인거 같아.

책을 사놓기만 하기 시작했다. 아 그 책 어차피 잘 집중이 안돼.

 

아 오늘 집중 안돼. 집에 갈래

어차피 이럴 거 아예 유튜브나 보다가 시간되면 집에가자.

 

근데 생각해보면, 구직기간의 장기화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고장난 것이다.

 

어디가 좀 아파서 그런거고, 원래는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근데 살아온 흔적을 살펴보면 대부분 저렇게 살았다. 자, 그럼 이제 누가 문제지?

 

오늘도 방향성 잃은 채로 끝낼 수는 없다.

나의 방황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과거엔 운동과 식습관 조절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었다.

쓰면서 해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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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갑자기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얼마나 갈까 싶은 와중에 어떤 영상을 봤다 100키로가 58키로까지 된 인간의 영상이었다.

꽤나 현실적인 방법을 잘 들고 왔다는 인상이었다. 갑자기 하는 거니까 갑자기 하는거다.

 

<지름신 퇴치 중>

본격적으로 유투브용 브이로그를 찍고 싶은건 아닌데 삶의 순간들과 지나간 생각들을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액션캠 사고 싶은 핑계라 할 수 있겠다. 당장은 휴대폰으로 찍으려 한다. 타임랩스로 찍으면 현실 인지 개쩜, 좋은듯.

 

<편집 실력을 높이고 싶다.>

당장 기존에 찍어둔 영상들 부터 퀄리티를 높여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리졸브는 쓰기가 너무 귀찮다는게~~ 아니냐고~~ 나만 그러냐고~~

 

<게으른 운동>

땀흘려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안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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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연애로 생각하라는 말에 꽤나 동의했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꽤 오래 끈질기게 썸타던 기업에게 결국 차였다.

 

첫 만남부터 위태위태했는데도 기어코 다음 만날 약속을 잡아댔었다.

세번째 만남때는 각종 신원증명과 자격증명에 대한 증거서류까지 가지고 부모님을 만나러 오라고까지 했다. 모든 단계가 엉망으로 진행되었다보니, 이 정도면 진짜 만나주려고 여기까지 불렀나 싶었었다.

 

임원이라는 이름의 부모님답게 참 근엄하게들 앉아있었다. 그리고 만남은 이전단계와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그들은 나의 갈팡질팡 이력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셨고, 진짜로 오래 만날 자신이 있는지, 진짜 좋아해서 온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였다. 잘 버는 큰기업하고 연애하려니 참 어렵구나 싶긴 했다.

 

마지막 만남 이후로 2주 동안 연락이 없었다. 솔직히 그 기업이 내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막상 부모님까지 뵙고 왔기 때문이었을까, 괜한 기대로 그 기업과의 채팅창을 100번정도는 들락날락거린 것 같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던 금요일, 오후 6시 15분.

퇴근시간이 지났기에 소식은 포기하고 출발한 귀갓길의 버스안에서 차이고 말았다. 

금방 내려야 하는 마을 버스라서 극적으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내리길래 괜한 심술에 가장 마지막에 내렸다. 멍하니 걷다가 지하철에 탔고, 같이 기대한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지하철에서 멍하니 휴대폰으로 탈락화면을 보고있으니 옆에 선 아저씨가 다소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별로 웃어드리고 싶진 않아서 옆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퇴근시간 지하철 비좁은 틈을 뚫고 굳이 칸을 옮겨대는 민폐를 왜 저지르나 했는데, 개중에도 분명 방금 차인애가 있었을것이다.

 

허탈했다. 방향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를 좀 좋아해주는 쪽의 기업한테 돌아가야 할지, 기약없고 비겁한(?) 비정규적인 계약 연애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아야 할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사실 아직 구직시장에서 나의 실패 역사는 길지 않다. 몇 번 대차게 차여보기 전에 계약연애 했었고, 제대로 임원까지 만나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다. 주위에 수 많은 시간동안 끊임 없이 차여오던 지인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허물어져 있으면 안된다.

 

하지만 주말 내내 허물어져 있었다. 어딘가 무너진 사람처럼 시간을 써댔다.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라 피곤하긴 하다.

 

이렇게 지내면 앞으로 계속 차이기만 할것이다. 예상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위해 일단 나왔다. 경제인구들은 대체 휴일 이기 때문에 지하철은 한산해서 좋았다. 오는 내내 사람이 없어서 다리를 조금 편히 벌리고 앉았다. 지하철 의자도 투엑스라지사이즈가 따로 나온다면 참 좋겠다. 나오면 서서가야지.

 

그리고 오피스에서 오전 내내 유투브를 보았다. 점심먹고 와서 채용공고 사이트에 들어갔다.

머리를 최대한 비우고 금사빠 신공을 발휘해서 다른 기업에 연애편지를 보냈다. 

6개월 인턴이라니, 혐오해 마지않는 계약연애지만 다른 부분이 이상형에 가까워서 무턱대고 보내봤다.

 

연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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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다.

의도와 술수로 범벅된 남을 위한 글을 써야 했다. 빌어먹는 삶을 살기 위한 절차는 놀랄만큼 세세하게 치열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의미 했다. 좀 더 큰 곳에서 오래, 편하게, 많이 그리고 거들먹 거리며 어깨에 힘주고 빌어먹기 위해서, 다른 빌어먹을 자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아니 사실 반복해야한다고 생각하느라 바빴다.

 

차분히 토대를 다져가며 성장하는 것에 집중하면 좋았을 텐데, 예상치 못한 면접의 기회는 나의 몸과 마음을 붕 뜨게 만들었다. 안전장치 없이 붕 뜬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더 가깝다. 높이 하늘에 올라 휘저은 손에는 포근한 구름이 스쳤고 얼핏얼핏 비치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꼈다. 동시에, 까마득한 아래 점처럼 보이는 어둔 땅바닥으로 당장 곤두박질 칠 것같은 위태로움도 현실이었다. 양가적 감정 앞에서 담담하지 못한 것은 죄였고 벌은 가혹했다. 끈 떨어진 연처럼, 베터리 다 되어가는 드론처럼 여기저기를 헤매며 지냈다.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한다던지, 시즌제 드라마의 예정된 종영에 한없이 무너진다던지 하는 방식이었다. 요컨대, 가야할 길을 알면서도 방앗간에 들러 가야할 길을 힐끔대며 들깨를 주워먹는 참새와 같았다. 

 

땅에 내려서고 싶었다. 아니면 적어도 미친것 처럼 소리지르던지, 그것도 안된다면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싶었다.

 

셋 다 못해서 그냥 자소서 쓰다가, 면접 갔다가, 설거지하고, 방청소하고, 카페갔다가, 씻고 자면서 살았다.

뻔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난 뻔한 어린이였다. 뻔한 학생이었고, 뻔한 군인이었으며, 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특별한 무언가는 아니었네.

뻔하게 살다갈 운명인건지, 관성적으로 뻔한 선택만 할 수 없게 되어버린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술을 너무 오래 참아가지고 헛소리가 늘었다.

이 글은 정말 헛소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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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을 쓴지 정말 오래 되었다.

자기소개서랍시고 나를 소개하는 글은 몇개씩 써제끼긴 했는데, 그건 나의 글은 아니고, 남의 글이었다.

 

글을 써야하는데라는 생각은 반복적이었다. 운동을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학교 선배와 점심을 먹고 왔다. 학교를 다닐때는 큰 공통점도 없었고, 난 살가운 후배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문득 연락해서 한끼 하게 된 건 둘이 비슷한 길을 선택해서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간의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비슷한 길을 가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다양한 말을 해주셨지만 핵심은 '그냥 하라' 였다. 

어떤 기회든지 포착이 된다면 무조건 하라. 

가고자 하는 길은 여러가지로 제약사항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다른 영역에 대한 지식도 많이 필요하다.(기반이 되어야한다.) 그럴 때 그런 지식이 없으면 어렵다. 어차피 필요한 사항이라면 무조건 해라. 

 

다른 생각이 너무 많았다.

매일 2시에 퇴근하신다는 선배에게, 나도 그런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되었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실력이 늘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알고리즘, 분명 공부하면 실력이 늘것이다.

그럼 해야겠다. 시간이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시간을 쏟아야 겠다.

얼른 커리어를 시작해서 시간을 쏟아야겠다.

 

그 분야가 어디든 어떻게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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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다. 하루 종일 뚱한 표정이었다가 오는 길에 크게 미소지을 일이 있었다.

 

 키가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남자애(180은 가뿐히 넘어보였다.)가 좁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손을 들고 건넜다. 마스크 위로 앳된 얼굴과 복장으로 미루어보아 초등학생으로 보였는데, 손을 들고 건너는게 귀여워 함박웃음을 지었다. 

 

 12살 까지 손을 들고 다녔었다. 그렇게 하는거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랬다. 생활기록부 기록으로 미뤄보아 160cm 정도의 결코 작지않은 덩치가 손들고 길을 건너는 장면은 그때 누군가에게는 무해한 코미디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즘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하는것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생긴 것이. 몇몇은 거친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몰래 담배를 꼬나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에서보다 더 생생한 자료를 공유하며 셀프 스터디 형식의 성교육도 활발했었다. 그렇게 또래문화가 성행할 즈음 따돌림을 당했었기 때문에, 초등 고학년을 돌이켜보면 사실 축구이외의 또래문화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문득 4학년 때 학교 운동장 좌측의 벤치에서 친구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넝쿨식물이 자연스레 많이 자라서 하늘이 다 가려져 있는 공간이었다. 여자애랑 단둘이 얘기한다는 왜인지 모를 쑥스러움 때문에 촘촘히 세워진 기둥 사이사이에 매달리다 시피해서 들었었다. 

"넌 욕을 많이 안해. 다른 애들처럼 그렇게 욕 많이 하지마"

 

 사실 이젠 이름도 흐릿하고 저 얘기를 해준 주인공이 그 친구가 맞는지도 헷갈린다. 그날의 기억을 대조하기 위해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 초등학교 동창회..?  열려도 초대받을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날 이후 선견지명에서 비롯한 현명한 조언을 철저히 받아들였다..면 좋았겠지만, 여느 남자애들처럼 어리석었다. 고등학교까지 친구들과의 대화는 그 시작과 끝이 대부분 욕설이었던 것 같다. 거의 욕설없이 산 지(군대는 예외로 치자)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언젠가 어느정도 나를 닮은 생명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손들고 건너게 될 것이다. 오늘 본 친구를 생각하며 한 번 더 미소지어야 겠다. 미소를 예약해둔 삶이라니, 나름 운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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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김에 해버리는게 어떨까?

철저한 계획을 쌓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며 나날이 조금씩 발전해 나간다.
너무 뻔하고 간단한 이야기지만 그게 성장과 성공의 정도다.

라고 말하는 것도 지겹게 들린다.

 

꼭 그래야만 하나? 대 천재가 아니더라도 잠깐씩 흥미가 돋을 때만 집중해서는 적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에서 이 글은 시작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증적으로 내가 해봤더니 되더라 하는게 제일 좋을텐데 아직 그렇게 대단한 일은 해낸 적이 없어서 글의 결론은 없다는 걸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나는 꽤나 오래 벼락치기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장기기억으로 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한 학습을 했다기 보다는 직전에 강력한 몰입으로 딱 맞춰 처리해온게 대부분이다. 미리미리 과업을 처리해 본 경험은 정말 손에 꼽는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인생 이 꼴이다 생각이 들때도 있긴 하지만, 최악으로 허접한 결과만을 내지는 않았다. 나름 많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때도 있었다. 

 

생각과 계획만 많고 특별한 실천이 없는 사람에게는 단계별로 하나씩 해나가는 것보다 그때 그때 필요에 의해서라도 한 걸음씩 성장해나가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어쨌든 시간에 맞춰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인재라면, 바야흐로 문어발식 인재라고 부르기에 적당하지 않을까?

 

내가 개념의 주창자로서 선두주자가 되어야 겠다.

 

실증하기 위해, 오늘도 한걸음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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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 별로 종종 걸리는 병이 있다. 병이라기 보다는 알레르기처럼 체질상의 문제로 때때로 터지는 증상의 집합으로 보는게 맞겠다.

 

 주된 증세는 여러 사이트들을 돌면서 채용공고를 확인하는 것이다. 취업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일련의 활동이 알레르기라니 혹시 역병에 걸린거 아닌가 의심이 든다. 체온은 정상범위가 맞다. 그리고 적당히 보는게 아니라 하루에 3~4시간을 볼때도 있으니 그게 중독인것이다.

 

 크리스탈 클리어한 대책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온 뒤, 우연한 기회와 마음을 모아 숭고한 데이터, IT의 길에 이 한 몸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었다. 몇 달 간의 교육을 거쳤지만 예상과는 달리 기업들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솔직히 혈투까지 상상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두고 두 개 정도의 기업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상황을 예상했었다. '얘는 네가 데려가라, 싫다 네가 데려가라.. ' 정도는 될 줄 알았다. 

 

 넣는 족족 추풍 낙엽처럼 튕겨나오는 서류들을 보며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잘 좀 부탁한다고 지원동기까지 세세하게 적어서 앞 주머니에 꽂아줬는데, 그렇게 헌신짝 처럼 탈락시키다니.. 언젠가 성공하면 복수해야할 기업들의 리스트가 스팸메일처럼 쌓여간다. 

 

 채용공고를 읽다보면 아주 가끔씩 가능성이 엿보이는 공고들이 있을 때가 있다. '될 지도 모르겠는데..?'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시야는 확 바뀌며 한 단계 밝아진 세상이 펼쳐진다. 목에 걸린 적당한 무게감의 사원증을 무시하려 애쓰며, 한 손으로 커피를 홀짝이며 다른 한손으로는 IT분야 입사자에게 지급된 최신형 맥북프로를 만지작대며 어제 배포한 대시보드 리포트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내가 보인다. 이 때 핵심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여야 한다. 전화나 슬랙이나 카톡 따위에 찌들어서 엑셀 켰다가 줌 켰다가 메일 켰다가 그러면 안된다. 

 

 혼자 키득대는 와중에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서 가디건을 주섬주섬 입었다. 현실은 역시 냉혹하다. 마침 주어진 25분의 시간도 끝나간다. 잡코리아 5분만 보고 공부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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