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담임선생님은 조금 특이하셨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얼굴 어딘가에 큰 점이 있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꽤나 걸걸한 성격이셨고, 얼핏 주워듣기로 장교출신이셨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장교로 전역한지 2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그 선생님을 생각해본다.

 

당시 다른 반 친구들은 정규 교과과정에 맞는 체육활동을 했다. (당연하게도)

우리 반은 특이하게 야구를 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프트볼이라고 해야 할까?

반 애들 모두에게 진짜 야구 복장을 입히고, 글러브와 방망이를 지급하셨었다.

돌이켜보면 야구에 진심인.. 나이와 위치가 꽤 되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중년 선생님이기에 가능했던 일일것이라 생각된다.

 

급격히 키가 크기 시작했던 때라 꽤나 타율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성장기라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남녀가 섞여서 경기했었다.

 

그 때 이후로는 야구를 보거나 하진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살면서 야구의 룰 정도는 알수 있게 된 건 그 선생님 덕분인 것 같다.

 

아 그때 나는 심판도 봤었다. 당시 엄마끼리 친한 아는 여자애가 투수로 던진 공이 포수를 지나쳐 내 소중한 곳을 때렸던 적도 있었다.

그랬네.. 그랬었네.. 그때 때문인건가..? ㅎ

 

난 멀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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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소비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나를 더 사랑하자는 마음에서 구매하는 것들인데, 진짜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실 모으는게 더 나을 것 같긴하다.

어쨌든 아주 충동적으로 셀프 흑백사진관을 예약했다.

 

짧고 퉁퉁한 지금 나의 모습은 사실 정말 별로다. 

근데 남은 날 중에 제일 젊은 날이기도 하고, 어쨌든 이때까지 잘 버텨준 게 고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활짝 웃는 모습을 좀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매일 남만 찍어주고, 나 자신에 대한 사진은 거의 찍지 않는, 기록하지 않는 나라고 생각하니. 아쉽잖아.

 

기회가 되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복해서 찍고 간직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의식 과잉인가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가는데, 난 과잉될 정도로 자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즘 내게는 나를 '잃어버릴' 일들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 내 사진을 얻었으면 뭘 포기해볼까?

뭘 사고 싶거나 만나고 싶어도 참아볼까?

 

역시 먹는거겠지? ㅋㅋ

 

어휴 오늘은 글이 정말 무슨 초등학생같이 이어진다.

커피를 두 잔 마셔서 그런가 보다. 그럴 수 있지 뭐.. 안 졸린게 어디야?

구직기간의 장기화의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돌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타인의 기준에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아무거나 먹게 되었다. 먹는거라도 내 마음대로 하자고 핑계를 댔다.

운동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에라도 좀 쉬자고 핑계를 댔다.

가계부를 적지 않았다. 자투리 돈이라도 마음대로 쓰자고 핑계를 댔다.

 

저녁 대부분은 핑계를 대면서 보내다보니, 오 이게 편하네? 싶었다.

 

이제 낮시간도 핑계를 대며 보내게 되었다.

 

자소서 제출 빈도가 줄었다. 아 그 기업 원래부터 안가고 싶었어.

끝내지 못한 강의가 늘었다. 아 그 강의 뭔가 별로 인거 같아.

책을 사놓기만 하기 시작했다. 아 그 책 어차피 잘 집중이 안돼.

 

아 오늘 집중 안돼. 집에 갈래

어차피 이럴 거 아예 유튜브나 보다가 시간되면 집에가자.

 

근데 생각해보면, 구직기간의 장기화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고장난 것이다.

 

어디가 좀 아파서 그런거고, 원래는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근데 살아온 흔적을 살펴보면 대부분 저렇게 살았다. 자, 그럼 이제 누가 문제지?

 

오늘도 방향성 잃은 채로 끝낼 수는 없다.

나의 방황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과거엔 운동과 식습관 조절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었다.

쓰면서 해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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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갑자기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얼마나 갈까 싶은 와중에 어떤 영상을 봤다 100키로가 58키로까지 된 인간의 영상이었다.

꽤나 현실적인 방법을 잘 들고 왔다는 인상이었다. 갑자기 하는 거니까 갑자기 하는거다.

 

<지름신 퇴치 중>

본격적으로 유투브용 브이로그를 찍고 싶은건 아닌데 삶의 순간들과 지나간 생각들을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액션캠 사고 싶은 핑계라 할 수 있겠다. 당장은 휴대폰으로 찍으려 한다. 타임랩스로 찍으면 현실 인지 개쩜, 좋은듯.

 

<편집 실력을 높이고 싶다.>

당장 기존에 찍어둔 영상들 부터 퀄리티를 높여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리졸브는 쓰기가 너무 귀찮다는게~~ 아니냐고~~ 나만 그러냐고~~

 

<게으른 운동>

땀흘려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안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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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연애로 생각하라는 말에 꽤나 동의했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꽤 오래 끈질기게 썸타던 기업에게 결국 차였다.

 

첫 만남부터 위태위태했는데도 기어코 다음 만날 약속을 잡아댔었다.

세번째 만남때는 각종 신원증명과 자격증명에 대한 증거서류까지 가지고 부모님을 만나러 오라고까지 했다. 모든 단계가 엉망으로 진행되었다보니, 이 정도면 진짜 만나주려고 여기까지 불렀나 싶었었다.

 

임원이라는 이름의 부모님답게 참 근엄하게들 앉아있었다. 그리고 만남은 이전단계와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그들은 나의 갈팡질팡 이력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셨고, 진짜로 오래 만날 자신이 있는지, 진짜 좋아해서 온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였다. 잘 버는 큰기업하고 연애하려니 참 어렵구나 싶긴 했다.

 

마지막 만남 이후로 2주 동안 연락이 없었다. 솔직히 그 기업이 내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막상 부모님까지 뵙고 왔기 때문이었을까, 괜한 기대로 그 기업과의 채팅창을 100번정도는 들락날락거린 것 같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던 금요일, 오후 6시 15분.

퇴근시간이 지났기에 소식은 포기하고 출발한 귀갓길의 버스안에서 차이고 말았다. 

금방 내려야 하는 마을 버스라서 극적으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내리길래 괜한 심술에 가장 마지막에 내렸다. 멍하니 걷다가 지하철에 탔고, 같이 기대한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지하철에서 멍하니 휴대폰으로 탈락화면을 보고있으니 옆에 선 아저씨가 다소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별로 웃어드리고 싶진 않아서 옆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퇴근시간 지하철 비좁은 틈을 뚫고 굳이 칸을 옮겨대는 민폐를 왜 저지르나 했는데, 개중에도 분명 방금 차인애가 있었을것이다.

 

허탈했다. 방향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를 좀 좋아해주는 쪽의 기업한테 돌아가야 할지, 기약없고 비겁한(?) 비정규적인 계약 연애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아야 할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사실 아직 구직시장에서 나의 실패 역사는 길지 않다. 몇 번 대차게 차여보기 전에 계약연애 했었고, 제대로 임원까지 만나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다. 주위에 수 많은 시간동안 끊임 없이 차여오던 지인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허물어져 있으면 안된다.

 

하지만 주말 내내 허물어져 있었다. 어딘가 무너진 사람처럼 시간을 써댔다.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라 피곤하긴 하다.

 

이렇게 지내면 앞으로 계속 차이기만 할것이다. 예상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위해 일단 나왔다. 경제인구들은 대체 휴일 이기 때문에 지하철은 한산해서 좋았다. 오는 내내 사람이 없어서 다리를 조금 편히 벌리고 앉았다. 지하철 의자도 투엑스라지사이즈가 따로 나온다면 참 좋겠다. 나오면 서서가야지.

 

그리고 오피스에서 오전 내내 유투브를 보았다. 점심먹고 와서 채용공고 사이트에 들어갔다.

머리를 최대한 비우고 금사빠 신공을 발휘해서 다른 기업에 연애편지를 보냈다. 

6개월 인턴이라니, 혐오해 마지않는 계약연애지만 다른 부분이 이상형에 가까워서 무턱대고 보내봤다.

 

연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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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다.

의도와 술수로 범벅된 남을 위한 글을 써야 했다. 빌어먹는 삶을 살기 위한 절차는 놀랄만큼 세세하게 치열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의미 했다. 좀 더 큰 곳에서 오래, 편하게, 많이 그리고 거들먹 거리며 어깨에 힘주고 빌어먹기 위해서, 다른 빌어먹을 자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아니 사실 반복해야한다고 생각하느라 바빴다.

 

차분히 토대를 다져가며 성장하는 것에 집중하면 좋았을 텐데, 예상치 못한 면접의 기회는 나의 몸과 마음을 붕 뜨게 만들었다. 안전장치 없이 붕 뜬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더 가깝다. 높이 하늘에 올라 휘저은 손에는 포근한 구름이 스쳤고 얼핏얼핏 비치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꼈다. 동시에, 까마득한 아래 점처럼 보이는 어둔 땅바닥으로 당장 곤두박질 칠 것같은 위태로움도 현실이었다. 양가적 감정 앞에서 담담하지 못한 것은 죄였고 벌은 가혹했다. 끈 떨어진 연처럼, 베터리 다 되어가는 드론처럼 여기저기를 헤매며 지냈다.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한다던지, 시즌제 드라마의 예정된 종영에 한없이 무너진다던지 하는 방식이었다. 요컨대, 가야할 길을 알면서도 방앗간에 들러 가야할 길을 힐끔대며 들깨를 주워먹는 참새와 같았다. 

 

땅에 내려서고 싶었다. 아니면 적어도 미친것 처럼 소리지르던지, 그것도 안된다면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싶었다.

 

셋 다 못해서 그냥 자소서 쓰다가, 면접 갔다가, 설거지하고, 방청소하고, 카페갔다가, 씻고 자면서 살았다.

뻔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난 뻔한 어린이였다. 뻔한 학생이었고, 뻔한 군인이었으며, 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특별한 무언가는 아니었네.

뻔하게 살다갈 운명인건지, 관성적으로 뻔한 선택만 할 수 없게 되어버린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술을 너무 오래 참아가지고 헛소리가 늘었다.

이 글은 정말 헛소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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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2학년의 끝자락에 월곡초등학교로 전학왔다.

당시 학교 바로 앞 동아 에코빌 아파트로 이사오게 되었고, 자연스레 월곡초에 다니게 되었다.

그 때의 디테일한 기억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학교의 정경들은 몇가지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개중 가장 선명한 것이 학교 후문에 관한 기억이다.

학교의 출입문은 총 3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문, 후문, 그리고 옆문(?) 이렇게 3개 였었다. 옆문이라 하니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로 보이나, 오늘은 후문을 위주로 담아내본다.

 

후문은 말 그대로 학교 부지의 뒷편에 위치했던 출입문이었다. 당시 학교는 야트막한 동산 위에 지어진 형태여서 약 2~3개의 건물이 이어져있던 구조로 있었다. 편의상 후건물이라 부른다면, 후건물 뒷편, 작은 테니스장이었는지 어쨌든 초록 우레탄 바닥 재질의 작은 공터에서 오르막길 형태로 조금 올라가면 후문이 있었다.

 

난 정문에서 거의 바로 이어진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4학년에 이사한 이후로는 집안에서 학교 운동장이 보일정도였다.) 후문에 갈 일은 많지 않았지만, 종종 들러 시간을 보내곤 하였으니 그곳엔 성북구 최고의 놀이동산이 있었기 때문이다.(드림랜드 제외) 학교 후문에서 출구방향으로 걸어나갈때 우측편에는 적당한 키의 나무들이 숲을 이룬 한 단 높은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 사이로 작게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당시 최고 스펙을 갖춘 최첨단의 놀이기구, 방방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며 방방이라는 놀이기구의 호칭에 관한 격렬한 논쟁을 수차례 겪었다. 팡팡, 퐁퐁 등등 다양했지만 외래어 트램펄린에서 파생된 것인것 같다라는 부분에서는 대부분 동의하였고, 끝내는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기억이 있다. 왜냐면 누가뭐래도 내마음속에서는 방방이라고 부를거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 방방을 운영하시던 분의 인상착의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이 나는건, 그 작은 공터에 방방이 몇 개가 있었고, 슬러시를 만들어 파셨다는 것 정도 뿐이다. 어릴 적 난 용돈을 많이 받는 아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방방 서비스를 무슨 돈으로 지불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10분이었는지 30분이었는지에 몇백원 내고 이용하고 있으면 종종 돈을 내지도 않았는데 슬러시를 주시곤 했다. 옛날엔 정이있었다, 따위의 말이 많이 들린다. 내 삶의 흔적속에선 그에 대해 동의할 만한 경험은 거의 없는데 그중 그 방방 주인분의 슬러시가 꼭 들어간다. 

 

단순히 아래위로 뛰는게 그렇게 재미있었던 그 시절, 선명하진 않지만 뿌옇게나마 행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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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을 쓴지 정말 오래 되었다.

자기소개서랍시고 나를 소개하는 글은 몇개씩 써제끼긴 했는데, 그건 나의 글은 아니고, 남의 글이었다.

 

글을 써야하는데라는 생각은 반복적이었다. 운동을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학교 선배와 점심을 먹고 왔다. 학교를 다닐때는 큰 공통점도 없었고, 난 살가운 후배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문득 연락해서 한끼 하게 된 건 둘이 비슷한 길을 선택해서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간의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비슷한 길을 가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다양한 말을 해주셨지만 핵심은 '그냥 하라' 였다. 

어떤 기회든지 포착이 된다면 무조건 하라. 

가고자 하는 길은 여러가지로 제약사항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다른 영역에 대한 지식도 많이 필요하다.(기반이 되어야한다.) 그럴 때 그런 지식이 없으면 어렵다. 어차피 필요한 사항이라면 무조건 해라. 

 

다른 생각이 너무 많았다.

매일 2시에 퇴근하신다는 선배에게, 나도 그런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되었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실력이 늘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알고리즘, 분명 공부하면 실력이 늘것이다.

그럼 해야겠다. 시간이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시간을 쏟아야 겠다.

얼른 커리어를 시작해서 시간을 쏟아야겠다.

 

그 분야가 어디든 어떻게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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