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밝은 분위기를 내뿜는, 아니,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항상 에너지를 뿜으며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는 등굣길에 학교 앞 지하철역에서 그녀를 만나 함께 강의실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불과 5분정도를 걷는 동안 10초마다 한명씩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하던 그녀를 보며 '다른세계'라는 건 이런거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검게 변한 휴대폰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란 것 치고는 평온해 보인다.

답장을 하려 움직이던 엄지가 멈칫 했다.

 

완전히 잊고있었다.

그녀와 나눈 건 아니지만, 그녀가 관계된 아주 특이한 일이 있었다.

 

미간이 좁아짐을 느끼는 순간,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렸다.

'바쁜가보네.. 보면 연락 줘, 기다릴게'

엄지 손가락이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잠깐의 방황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세 번의 신호음이 끝나기 직전,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어, 성민아.. 오랜만이야.'

 

말 끝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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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올래?'

 

 짧은 진동이 끝남과 동시에 화면에 떠올랐던 문구도 사라졌다.

 

 이런 사람이었던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간에 이런 연락을 보낼 사람이었던가? 하는 의문과 함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대화창의 목록 제일 상단, 빨간 숫자 1 옆에서 읽을 수 있는 용건은 더할나위 없이 명확했다. 잠금 버튼을 한번 더 눌렀을 때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인 것 까지 알 수 있었다.

 잠시 기다려봐도 다른 진동은 추가되지 않았다.

 

 오해일지도 모른다.

 화면너머의 굳건한 5글자에 어떤 부가설명도 덧붙여지지 않은 채 시간이 꽤나 흘렀다.

 

 오해가 아닌 것 같다.

 떠올리다보니 스쳐지나간 대학생활에서도, 그 이후의 삶 속에서도 그녀와 특별한 순간을 나눈 기억은 없었다. 대학 신입생이라는 신분을 같은 장소와 같은 시기에 얻게되어 몇 번 술자리를 갖기는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딱히 누군가의 기억속에 큰 임팩트를 남길줄 모르는 흐리멍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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