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연애로 생각하라는 말에 꽤나 동의했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꽤 오래 끈질기게 썸타던 기업에게 결국 차였다.

 

첫 만남부터 위태위태했는데도 기어코 다음 만날 약속을 잡아댔었다.

세번째 만남때는 각종 신원증명과 자격증명에 대한 증거서류까지 가지고 부모님을 만나러 오라고까지 했다. 모든 단계가 엉망으로 진행되었다보니, 이 정도면 진짜 만나주려고 여기까지 불렀나 싶었었다.

 

임원이라는 이름의 부모님답게 참 근엄하게들 앉아있었다. 그리고 만남은 이전단계와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그들은 나의 갈팡질팡 이력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셨고, 진짜로 오래 만날 자신이 있는지, 진짜 좋아해서 온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였다. 잘 버는 큰기업하고 연애하려니 참 어렵구나 싶긴 했다.

 

마지막 만남 이후로 2주 동안 연락이 없었다. 솔직히 그 기업이 내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막상 부모님까지 뵙고 왔기 때문이었을까, 괜한 기대로 그 기업과의 채팅창을 100번정도는 들락날락거린 것 같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던 금요일, 오후 6시 15분.

퇴근시간이 지났기에 소식은 포기하고 출발한 귀갓길의 버스안에서 차이고 말았다. 

금방 내려야 하는 마을 버스라서 극적으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내리길래 괜한 심술에 가장 마지막에 내렸다. 멍하니 걷다가 지하철에 탔고, 같이 기대한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지하철에서 멍하니 휴대폰으로 탈락화면을 보고있으니 옆에 선 아저씨가 다소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별로 웃어드리고 싶진 않아서 옆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퇴근시간 지하철 비좁은 틈을 뚫고 굳이 칸을 옮겨대는 민폐를 왜 저지르나 했는데, 개중에도 분명 방금 차인애가 있었을것이다.

 

허탈했다. 방향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를 좀 좋아해주는 쪽의 기업한테 돌아가야 할지, 기약없고 비겁한(?) 비정규적인 계약 연애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아야 할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사실 아직 구직시장에서 나의 실패 역사는 길지 않다. 몇 번 대차게 차여보기 전에 계약연애 했었고, 제대로 임원까지 만나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다. 주위에 수 많은 시간동안 끊임 없이 차여오던 지인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허물어져 있으면 안된다.

 

하지만 주말 내내 허물어져 있었다. 어딘가 무너진 사람처럼 시간을 써댔다.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라 피곤하긴 하다.

 

이렇게 지내면 앞으로 계속 차이기만 할것이다. 예상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위해 일단 나왔다. 경제인구들은 대체 휴일 이기 때문에 지하철은 한산해서 좋았다. 오는 내내 사람이 없어서 다리를 조금 편히 벌리고 앉았다. 지하철 의자도 투엑스라지사이즈가 따로 나온다면 참 좋겠다. 나오면 서서가야지.

 

그리고 오피스에서 오전 내내 유투브를 보았다. 점심먹고 와서 채용공고 사이트에 들어갔다.

머리를 최대한 비우고 금사빠 신공을 발휘해서 다른 기업에 연애편지를 보냈다. 

6개월 인턴이라니, 혐오해 마지않는 계약연애지만 다른 부분이 이상형에 가까워서 무턱대고 보내봤다.

 

연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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